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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

루이 파스퇴르에 대하여

화학에 조예가 깊었던 루이 파스퇴르. 19세기 생물학, 농학, 의학 및 위생학 분야의 가장 큰 과학적 혁명들 뒤에는 그가 있었습니다.

결정학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이후 머지않아 루이 파스퇴르는 광견병 백신 개발 연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혁신적인 발견들로 가득 찬 그의 삶은 현존하는 질병을 연구하고 이해하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습니다.

늘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며 연구에 헌신했던 파스퇴르 박사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고 감염병에 의한 농공업 분야의 피해를 막기 위해 광범위한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과학분야와 공익사업에 대한 헌신적 이념을 근간으로 1887년 프랑스 파리에 비영리 연구기관인 파스퇴르연구소(Institut Pasteur)를 설립하였습니다.

파스퇴르연구소는 최초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 이래 현재까지 10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연구기관입니다. 파스퇴르 박사의 열정과 비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5개 대륙 33개소로 구성된 파스퇴르연구소 국제 네트워크 (Institut Pasteur International Network)로 이어졌습니다. 파스퇴르연구소 국제 네트워크는 탁월한 기초연구과 교육 활동을 통한 공중보건 증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루이 파스퇴르의 업적

결정학 및 분자 비대칭 연구

1847년, 분자 비대칭 연구
수년간 결정학, 화학 및 광학 분야 연구를 수행한 끝에 파스퇴르 박사는 결정체의 외형과 분자 구성 및 편광 효과의 유사점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즉, 비대칭적 결정은 편광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반면 대칭적 결정은 그렇지 않음을 밝혀낸 것입니다.
이러한 발견을 통해 파스퇴르 박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법칙을 정립합니다.

“생명(삶)의 영향 하에 유래한 모든 물질들만이 비대칭적이다. 그 이유는 스스로가 비대칭적인 우주의 힘의 영향을 받아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비대칭성은 유기계와 무기계(광물계)를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루이 파스퇴르는 이러한 발견을 통해 입체화학 및 공간화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의 장을 열었으며, 이는 나아가 합성화학 분야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발효, 1857년 부터 1862년 까지의 업적

1857년, 발효 연구의 첫발을 내딛다
파스퇴르 박사는 포도산염 결정(paratartrate crystals)을 관찰하면서 분자의 비대칭성을 발견했는데, 포도산(paratartaric acid) 용액 속의 산이 발효되어 곰팡이에 의해 해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효된 용액 속에는 L-타타르산 만이 남아있었으며, R-타타르산은 이미 분해되어 사라진 후였습니다. 즉, 편광에 반응성을 가지지 않았던 포도산염 결정이 발효에 의해 반응성을 가진 물질((L-타타르산)로 변형된 것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파스퇴르 박사는 당시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였던 유스투스 폰 리비히 (Justus von Liebig) 의 가설에 상반되는 이론을 세우게 됩니다. 리비히 박사가 발효는 죽음의 과정이라고 판단한 반면, 파스퇴르 박사는 활성을 가지는 모든 물질들은 생명 현상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발효가 죽음이 아닌 삶의 과정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즉, 오직 삶이라는 생명활동에 의해서 편광에 활성을 지닌 물질이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파스퇴르 박사의 이러한 주장은 후속 연구를 통해 분자 비대칭에서 발효까지, 그리고 나아가 전염병 연구까지 이어지는 최초의 단서를 제공하였습니다.

1857년 -1862년, 발효연구를 시작하다
당시 프랑스 릴(Lille) 지역의 많은 양조업자들은 비트를 사용하여 알콜을 생산했는데, 품질관리가 어려워지자 파스퇴르 박사에게 젖산 및 알코올 발효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파스퇴르 박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

알코올 발효는 유기체의 활동에 의해 일어난다 - 발효

발효를 연구하기 위해 고온으로 살균 처리된 발효 배지를 준비하고, 여기에 소량의 순수한 술밑(ferment)을 넣는다 .

이것은 미생물학 기술의 아주 기초적인 개념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파스퇴르 박사의 연구 결과는 “발효제는 어디서 온 것일까”, “발효제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미생물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연발생설이 설명하듯이 자연적으로 생상되는 것일까?” 와 같은 새로운 연구 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자연발생설 논쟁의 끝을 맺다

당시 자연발생설은 과학계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파스퇴르 박사는 고유의 실험법을 통해 자연발생설에 새롭게 접근했습니다.

먼저 그는 백조의 목처럼 생긴 길다란 S자형 플라스크 안에 물을 담아 증기가 플라스크 입구 끝으로 배출될 때 까지 몇 분동안 끓인 후 물을 식혔습니다. 물이 냉각되는 동안 먼지와 미생물이 포함된 공기가 플라스크로 유입되었지만 길게 구부러진 목 부분 이상으로는 공기가 유입될 수 없었기 때문에 플라스크 내 용액은 미생물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미생물이 물, 공기, 사물, 사람의 피부 등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과, 이 중 일부는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공기 중의 먼지는 성장하고 증식하는 미생물들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부패하기 쉬운 용액들도 가열후 공기 및 이에 포함된 미생물과 접촉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면 오염되지 않고 순수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파스퇴르 박사는 세균들을 퇴치하고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했는데, 이것은 개인 및 공중 위생 관리를 위한 기본적 행동양식이 되었습니다.

이 중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외인성 미생물과 바이러스에 의해 생명체 또는 비활성 환경이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무균처리법 이었습니다. 아울러 리넨과 봉합제(드레싱)는 반드시 멸균처리를 거쳐야 하며, 수술 도구들을 불꽃을 통과시킨 후 사용해야 하고, 반드시 손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조언들은 근대적 수술법의 광범위한 확산을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발효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파스퇴르 박사는 발효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며 관련 연구를 계속 이어갔으며, 부티르산의 발효를 연구하던 중, 혐기성균, 즉 공기 없이 증식하는 미생물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파스퇴르 박사는 발효는 공기가 없는 환경에서 일어난 생명활동의 결과라 결론짓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당시 농작물 및 공산품에 피해를 입히던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자신의 미생물학 이론을 산업계와 농업계에 적용하였습니다.

산업계와 농업계를 구하라

와인, 맥주 그리고 저온살균법
와인은 프랑스의 주력 산업이었으나, 많은 측면에서 어려운 분야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와인 양조자들은 원인과 대응법이 알려지지 않은 이름 모를 질병의 발생으로 인해 생산된 와인의 품질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이러한 현상이 수출 뿐 아니라 영국과의 무역 협정 이행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황제 나폴레옹3세는 파스퇴르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일단 각 포도주의 부패가 특정한 발효에 의한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와인을 55도씨에서 60도씨 사이에 가열함으로써 와인을 부패시키지 않으면서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동시에 고유의 향은 그대로 보존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널리 알려진 저온살균법입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와인 양조업자들과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던 맥주 양조업자들에게도 불순물로부터 맥아를 보존하는 방법과 함께 55도씨에서 저온처리하는 새로운 방법을 전수했습니다.

누에병 연구
1865년 프랑스의 누에산업은 각종 질병에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누에병은 프랑스 전지역에 걸쳐 경제에 위협을 가했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소아시아와 같은 기타 실크 생산국에까지 확산되었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누에가 노제마병(nosema disease) 또는 무름병(flacherie)의 두가지 질병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현미경 관찰을 통해 이 두개의 질병 중 노제마 질병이 유전성과 전염성을 가진다는 사실과 이 질병에 감염된 애벌레가 반짝이는 소체(corpuscles)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파스퇴르 박사는 건강한 누에씨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포 알 생성법(cellular egg production)을 도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암나방이 독립된 공간에서 알을 부화하도록 분리시킨 후 부화를 끝낸 암나방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는데, 반짝이는 소체가 발견되면 부화된 알을 모두 폐기하고, 소체가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는 번식을 개시한 것입니다.
파스퇴르 박사가 고안한 이 실험법은 프랑스의 양잠업을 구하는 간단한 방법이자, 나아가 향후
전염병 연구로의 길로를 닦는 획기적 성과였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를 통해 유전성 및 전염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이에 대한 예방수칙들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에드워드 제너는 백신 접종을, 루이 파스퇴르는 백신을 발명하다

55세 에서 65세 까지의 기간 동안, 파스퇴르 박사는 미생물학을 응용연구하여 치료제와 의료수술에 접목시켰습니다. 질병의 원인이 미생물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후 질병 퇴치를 위한 방안을 찾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파스퇴르 박사의 가장 위대한 연구 성과는 바로 광견병 분야입니다.

1877년, 감염병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던 파스퇴르 박사는 아래와 같은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포도상구균은 골수염과 절종의 원인균임

연쇄상구균은 산욕기 감염의 원인균임

폐렴구균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 1749-1823)는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하면 천연두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에드워드 제너는 소에 발병하는 질병을 사용하여 백신을 만들었는데, 이 질병은 천연두와 흡사하지만 사람에게는 무해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너의 발견은 인간의 질병과 유사한 질병이 동물에게서 발병하는 동시에 인체 내에서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특수한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너의 발견을 토대로 파스퇴르 박사는 감염인자 자체를 사용하여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연구했으며, 이 방법은 이후 1878년 콜레라, 1881년 탄저병과 같은 다양한 질병에 적용되었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감염병, 무균처리 및 예방접종 연구 분야에 자신의 연구법을 접목시킴으로서 면역학 연구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죽음의 전령 광견병,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1880년 파스퇴르 박사는 그의 실험법을 인간 질병 연구에 적용시켰는데, 특히 인간 뿐 아니라 그가 실험 목적으로 사용하는 동물에게도 영향을 주는 광견병 연구를 선택했습니다.

초기에 파스퇴르 박사는 광견병 바이러스를 분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의 저해상도 현미경으로는 바이러스를 관찰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과학자들은 한 세기가 지난 후 전자현미경이 개발된 1962년에 이르러서야 광견병 바이러스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광견병은 신경계통의 질병이라는 사실에 기반하여 파스퇴르 박사는 공동연구자인 에밀리 록스 (Emile Roux) 와 공동연구를 통해 광견병에 걸린 개의 뇌의 일부를 다른 개의 뇌에 주입했지만 실험 결과 접종된 개는 곧 죽었습니다.

위의 실험 결과를 기반으로 이들은 토끼를 대상으로 연구를 계속했으며, 수많은 토끼를 거쳐 실험을 거듭한 결과 안정적인 독성을 가진 백신을 개발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이어 파스퇴르 박사는 백신의 독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광견병에 걸린 토끼의 척수를 분리하여 플라스크 안에 넣고 수분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 건조시켰으며, 실제 독성은 점점 감소하다 결국 사라졌습니다. 파스퇴르 박사가 전처리된 척수를 독성을 점차 증가시켜 가며 개에 주입한 결과 광견병에 걸리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파스퇴르 박사는 질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프로토콜을 개발했습니다.

1884년 2월 25일 파스퇴르 박사는 찰스 챔버랜드(Charles Chamberland)와 에밀리 룩스와 함께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이 방법의 실효를 평가하기 위한 연구위원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들의 연구 성과가 의심할 여지 없이 증명되었음은 물론입니다.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 파스퇴르 박사는 백신을 사람에게 테스트 하는 것을 한동안 두려워했습니다.

마침내 광견병을 정복하다

1885년 7월 6일 아침, 파스퇴르 박사에게 백신의 인간 접종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극복해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14번 물린 9살의 조셉 마이스터(Joseph Meister)가 그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외과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외과의인 그란처 박사 (Dr. Grancher)에게 접종을 요청했습니다. 조셉 마이스터는 10일 동안 독성이 점차 강화된 백신을 13번에 걸쳐 접종받았습니다. 그 결과 조셉 마이스터는 광견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광견병 백신을 접종한 최초의 인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이 비밀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파스퇴르 박사는 그의 성공을 일단 세상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1885년 9월, 15살의 소년인 장 밥티스트 줄리에 (Jean-Baptiste Juille)가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심하게 물린채로 파스퇴르박사의 실험실에 도착했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는 소년에게 백신을 접종했고 그 결과는 역시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후 파스퇴르 박사가 자신의 성과를 널리 알리자, 광견병에 걸린 동물들에게 물린 수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전역에서 모여들었습니다.

곧 파스퇴르 박사는 광견병 백신 클리닉을 설립하고 연구와 교육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3년 후, 파스퇴르연구소(프랑스 파리 소재)가 문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