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연구소

두려움 넘어…치명적 바이러스에 맞선 과학자들

2017-07-10
■ 한국파스퇴르硏 BL3실험실 르포

메르스 등 위험 미생물 연구
음압으로 공기흐름 억제
두겹의 보호복·헬멧쓰고 연구


좀비나 유전자 재조합으로 슈퍼 영웅이 만들어지는 영화에서 자주 봤던 문양이 커다란 철문에 새겨져 있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생물학적 위험(Biohazard)'을 나타내는 표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생물안전등급3(Biosafety Level3·BL3)' 연구시설. 이곳에서는 결핵균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광견병균 등 인류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미생물을 연구하고 있다. 기자는 보호복과 함께 얼굴에 밀착되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단 한 개의 보호복만 입었을 뿐인데 15분이 넘게 걸렸다.

"문을 두 번 더 통과하면 결핵균과 메르스, 광견병균이 있는 연구실이 나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강의성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안전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2년 전 한국에 '팬데믹(pandemic·전염병이 유행하는 상태)'을 일으켰던 메르스 바이러스를 현미경을 통해 보고 싶었던 기자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강의성 팀장은 "광견병 실험실은 세 번의 광견병 예방 백신을 접종하고 2개월 뒤 몸에 항체가 형성됐는지 확인된 사람만 들어가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메르스가 발발한 지 2년이 지났다. 이후 잊을 만하면 지카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등이 나타나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당하지만은 않는다. 더운 날씨에도 보호복을 입고 실험실을 오가며 미생물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국파스퇴르연구소 BL3를 방문했을 때도 CCTV를 통해 실험을 마친 연구자들이 두 겹의 두꺼운 보호복을 벗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권도윤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연구원은 "한국파스퇴르연구소 BL3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시간 안에 보호복을 안전하고 빠르게 입고 벗는 훈련·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며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반드시 허가받은 두 명의 연구원이 함께 실험실에 들어가는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미생물은 사람에게 미치는 유해 정도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된다. 제1위험군은 비교적 안전한 미생물로 건강한 성인에게는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대장균이, 제2위험군은 감염됐을 때 증세가 심각하지 않고 치료가 용이한 콜레라균, 홍역 등이 포함된다. 이들 미생물은 BL1, BL2 시설에서 연구 가능하다. BL3에서만 연구가 가능한 제3위험군에 속하는 미생물은 무시무시하다. 광견병과 결핵, 메르스는 물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황열병 바이러스 등이 포함된다. 사람에게 감염될 경우 증세가 심각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미생물이다. BL4에서만 연구할 수 있는 제4위험군에는 치료가 어려운 에볼라 바이러스, 헨드라 바이러스 등이 있다. 국내에는 50여 곳의 BL3와 단 한 곳의 BL4 시설이 정부에서 허가를 받고 운영되고 있다.

BL3 시설은 미생물의 외부 유출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음압' 시설이 갖춰져 있다. 기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바람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공기가 이동한다. 밀폐된 공간의 문을 열었을 때 내부에 있던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면 압력을 낮춰야 한다. 이를 음압이라고 한다. BL3는 '경의실'로 불리는 전실1이 있고, 이 문 너머 전실2가 있다. 전실1에서 첫 번째 보호복으로 갈아입은 뒤 전실2로 들어간다. 전실2에서 한 번 더 보호복을 착용하고 실험실 통로로 불리는 '워크룸'으로 들어간다. 워크룸 너머에 있는 독립된 실험실에 미생물이 있다. 밀폐구역 내 실 간 차압은 -10㎩로 워크룸은 -25㎩, 실험실은 -35㎩ 및 -45㎩이다. 대기압이 약 10만㎩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다. 기압이 낮으면 공기 중의 산소 농도 역시 낮아지기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높은 산에 처음 올랐을 때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스크와 보호 헬멧까지 착용하면 숨 쉬기는 더 힘들어진다. 마치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마스크를 쓰고 실험기구를 다루는 것과 같다. 따라서 연구원이 실험실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시간이다. BL3 실험실의 공기는 1시간에 12~20회씩 바뀐다. 만약 메르스 실험실 연구자가 문을 열고 워크룸으로 나왔다면 옆에 있는 광견병균 실험실과 결핵균 실험실에 있는 연구원은 30분 동안 밖으로 나올 수 없다. 행여라도 워크룸에 옮겨진 미생물이 정화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BL3 시설 등에서 약 50만개에 달하는 신약후보물질을 연구하고 있다. 미생물이나 감염된 세포에 신약후보물질을 노출시켜 효과를 검증한 뒤 동물 실험실로 옮겨 후보물질을 선별한다. 과거 10년의 연구 끝에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다제내성 결핵(결핵 치료 약물에 내성이 생긴 상태)' 치료제인 'Q203'을 개발했고 이를 기반으로 '큐리언트'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 2A상을 준비하고 있다.

류왕식 한국파스퇴르연구소장은 "현재 연구소에는 BL3 외에 BL2 시설에서 간염은 물론 지카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리슈만편모충증 등 다양한 질환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며 "점점 거세지는 미생물의 반격에 맞서 인류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프랑스의 생명과학 및 바이오기술(BT) 연구기관인 파스퇴르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국내에 공동으로 설립한 비영리 전문 연구기관이다.


출처: 매일경제 (2017-07-10)
사진출처: 한국파스퇴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