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연구소

[국민일보]신약은 IT와 달라... 개발위해 느긋한 투자 필요

2015-06-04
'한강의 기적' 듣고 한국행... "외면받는 연구분야 더 매진"

지난달 경기도 분당에 자리한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찾았다. 작년 부임한 하킴 자바라 연구소장(CEO)를 만나기 위해서다. 루즈한 셔츠에 패딩 베스트 복장의 그는 인터뷰 기사를 위한 사진 촬영에도 편한 복장을 고수했다. “이 차림이 내가 늘 연구하는 복장이에요. 인터뷰를 위해 억지로 꾸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외국계 과학자답게 권위적이지 않고 개방적이었다. 
 
하킴 자바라 박사가 한국을 오게 된 건 지극히 우연이었다. 당시 미국 국립암센터에서 일하던 그는 나름 뉴욕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프랑스 파리파스퇴르연구소는 그에게 한국지사에 근무할 의향을 물어왔다. 아시아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한국’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또 미국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서울은 열정적인 도시였다. 그는 이미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알고 있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하킴은 그렇게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러나 한국의 파스퇴르연구소는 그가 예상하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고 한다.
 
“이곳의 첫인상은 ‘무기력함’이었어요. 모든 연구원들이 나만 바라봤죠. 마치 내가 이곳을 구원해주길 바라는 눈빛이었어요. 예상과 다른 한국의 모습에 이곳을 떠나야 할지 고민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이곳을 바꿔보자 마음먹었죠.” 
 
이렇게 그는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서 작은 변화를 일궈나갔다. 우선 연구원들의 죽은 열정을 살려내는 일이었다. 수직적인 관계를 존중하는 한국 문화를 타파하고 싶었던 그는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을 계획했다. 연구소에 소속된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다. 분명 한국에서는 낯선 문화다. 하킴 소장은 “모두의 의견을 듣는 게 중요했다. 또 무작정 자신의 상사 혹은 동료에게서 뉴스를 접할 게 아니라 CEO가 직접 나서 직원들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전한다면 분명 받아들이는 게 다를 것이다. 타운홀 미팅은 단순한 잡담이 아니라 연구소에 일어난 일들을 깊이 있는 토론을 통해 풀어보는 자리”라고 말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역할은 수천만 개의 화학물질 가운데 약이 될 만한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새로운 신약 물질을 발견해내는 바이오 이미징 기술과 초고속 스크리닝 기술을 바탕으로 빠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 내성결핵균을 치료할 신약 후보물질을 발견해 기술 이전한 것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하킴 소장은 이곳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실감할수록 정부의 투자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좀 더 느긋한 투자가 필요하죠.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마치 한국의 IT나 자동차산업에 대한 투자처럼 생각한다면 한국의 신약 개발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원하는 결과만 생각하는 투자는 과학자들의 창의적인 연구 활동을 저해해 신약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거나 또 다른 물음을 던지면 또 다른 탈출구가 나오고 이 과정에서 신약을 발견하는 기회가 생깁니다.” 
 
인터뷰하는 동안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정부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던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하킴은 “치료약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는 항생제 내성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다. 부유한 나라도, 가난한 나라도 항생제 내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대형 제약회사는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항생제 내성 연구에 주목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사명은 전 인류가 보이지 않는 질병에 고통 받지 않도록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 분야에 더욱 매진하는 것”이라며 “특히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실제 질병과 연관된 여러 가지 샘플들을 쉽고 빠르게 제공받을 수 있어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처: 국민일보 (2015-03-02)